우리 몸을 순환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혈액은 단순한 붉은 액체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생명을 지키는 다양한 성분들이 숨어 있죠. 그중에서도 특히 '황금빛 생명수'라고 불리는 부분이 바로 '혈장(Plasma)'입니다. 그리고 이 혈장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놀라운 의학 기술이 바로 '혈장치료'입니다. 오늘은 우리 몸의 필수 액체 성분인 혈장이 무엇인지, 혈장치료는 어떤 원리로 이루어지며, 어떤 경우에 활용되는지, 그리고 그 효과와 주의해야 할 부작용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혈장이란 무엇인가요?
혈액은 크게 혈구(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와 혈장으로 구성됩니다. 혈액 전체의 약 55%를 차지하는 혈장(Plasma)은 혈구 세포들을 제외한 나머지 액체 성분을 말합니다. 혈장을 원심분리하면 혈구는 아래로 가라앉고, 위에 뜨는 노란색 액체층이 바로 혈장입니다.
혈장의 주요 구성 성분 및 기능
수분 (약 92%): 혈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영양분, 호르몬, 노폐물 등을 운반하고 체온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단백질 (약 7%):
- 알부민: 혈액의 삼투압을 유지하여 혈관 내 수분 균형을 조절하고, 다양한 물질(호르몬, 약물 등)을 운반합니다.
- 글로불린: 면역 기능(항체), 운반 기능, 혈액 응고 등에 관여하는 다양한 단백질을 포함합니다. 특히 면역글로불린(항체)은 외부 침입자에 대항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피브리노겐: 혈액 응고에 필수적인 단백질입니다.
기타 용질 (약 1%):
- 전해질: 나트륨, 칼륨, 칼슘, 염소 등 세포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이온들입니다.
- 영양소: 포도당, 아미노산, 지방산, 비타민 등 세포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과 재료들입니다.
- 호르몬 및 효소: 몸의 기능을 조절하는 다양한 물질들입니다.
- 노폐물: 요소, 크레아티닌 등 신장을 통해 배출되어야 할 물질들입니다.
이처럼 혈장은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다양한 생명 활동을 지원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 혈장치료란 무엇인가요?
혈장치료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뉩니다.
가. 회복기 혈장치료 (Convalescent Plasma Therapy)
정의: 특정 감염병에서 완치된 환자의 혈장을 채취하여, 해당 질병을 앓고 있는 다른 환자에게 주입하는 치료법입니다.
원리: 완치자의 혈장 속에는 질병을 일으킨 병원체에 대한 '중화항체(Neutralizing Antibody)'가 풍부하게 들어있습니다. 이 항체를 환자에게 직접 주입함으로써, 환자의 면역 체계가 병원체와 싸우는 것을 돕고 질병의 진행을 억제하는 '수동 면역(Passive Immunity)' 효과를 유도합니다.
역사: 회복기 혈장치료는 수백 년 전부터 사용되어 온 유서 깊은 치료법입니다. 스페인 독감(1918년), 홍역, 볼거리, 소아마비 등 다양한 전염병 유행 시기에 활용되었으며, 최근에는 사스(SARS), 메르스(MERS), 에볼라,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시도되었습니다.
나. 혈장분리교환술 (Plasma Exchange / Plasmapheresis)
정의: 환자의 혈액에서 병적인 물질(예: 자가면역 항체, 면역 복합체, 독소 등)이 포함된 혈장을 분리하여 제거하고, 대신 건강한 혈장(신선동결혈장 또는 알부민 용액)을 주입하는 치료법입니다.
원리: 혈액을 특수 장비로 통과시켜 혈구와 혈장을 분리하고, 환자에게 유해한 성분이 포함된 혈장을 제거한 뒤, 부족해진 혈장을 보충하여 혈액 내 병적 물질의 농도를 낮추는 원리입니다.
3. 어떤 경우에 활용하고, 어떤 효과가 있나요?
가. 회복기 혈장치료의 활용 및 효과
활용 질환:
- 코로나19: 특히 초기 팬데믹 시기에 치료제나 백신이 없을 때 중증 환자에게 시도되었습니다.
- 기타 바이러스 감염병: 사스, 메르스, 에볼라, 신종 독감 등 치료제가 마땅치 않은 신종 감염병 발생 시 긴급 치료 목적으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 일부 세균 감염병: 항생제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특정 세균 감염에도 제한적으로 시도될 수 있습니다.
효과:
- 환자의 체내에 직접 항체를 공급하여 바이러스나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고, 질병의 중증도를 낮추며, 회복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 특히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나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중증 환자에게 고려될 수 있습니다.
- 빠르게 항체를 공급할 수 있어 질병 확산 초기에 신속한 대처가 가능합니다.
나. 혈장분리교환술의 활용 및 효과
활용 질환: 혈액 내 특정 유해 물질이 과도하게 생성되어 발생하는 자가면역 질환, 신경학적 질환, 혈액 질환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됩니다.
- 중증 근무력증: 신경-근육 접합부에 대한 자가항체를 제거하여 근력 약화를 개선합니다.
- 길랑-바레 증후군: 말초신경에 대한 자가항체를 제거하여 신경 손상을 줄이고 회복을 돕습니다.
- 혈전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 (TTP): 혈전 생성을 유발하는 물질을 제거하고 부족한 효소를 보충합니다.
- 일부 혈관염, 신장 질환, 중독: 혈액 내 유해 물질이나 염증 유발 물질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 이식 거부 반응: 장기 이식 후 발생하는 급성 거부 반응을 억제하는 데 활용되기도 합니다.
효과
- 병적인 물질을 직접적으로 제거하여 질병의 급성기 증상을 빠르게 호전시킬 수 있습니다.
- 약물 치료만으로는 효과가 부족하거나 부작용이 심한 경우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4. 혈장치료의 부작용
혈장치료는 생명을 살리는 중요한 치료법이지만,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합니다.
공통적인 부작용
- 알레르기 반응: 혈장 성분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두드러기, 가려움증, 발열, 오한, 메스꺼움, 호흡 곤란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구연산 독성 (Citrate Toxicity): 혈액 응고를 막기 위해 사용되는 구연산이 체내에 축적되어 저칼슘혈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손발 저림, 근육 경련, 심장 박동 이상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저혈압: 혈액량 변화나 특정 물질 주입으로 인해 혈압이 일시적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 혈액 응고 문제: 혈장 성분의 변화로 인해 혈액 응고에 이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 감염: 혈액을 통한 감염(B형 간염, C형 간염, HIV 등) 위험이 이론적으로 존재하지만, 최근에는 혈액 스크리닝과 처리 기술의 발전으로 매우 낮습니다.
혈장분리교환술의 추가적인 부작용
- 혈관 접근 문제: 혈액을 빼내고 다시 넣기 위한 굵은 정맥관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출혈/혈전: 혈액 응고 방지제 사용 및 시술 과정에서 출혈 또는 혈전 형성 위험이 있습니다.
- 혈액량 변화로 인한 심혈관계 부담: 환자의 심장 상태에 따라 주의가 필요합니다.
중요: 혈장치료는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판단 하에 진행되어야 하며,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부작용 발생 시 즉각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혈장은 우리 몸의 다양한 생명 활동에 관여하는 소중한 자원이며, 이를 활용한 혈장치료는 특정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치료법입니다. 특히 치료제가 없는 감염병이나 자가면역 질환의 급성기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혈장치료의 원리와 효과, 그리고 부작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필요할 때 적절한 치료를 받고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