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혈액은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물질입니다. 상처가 났을 때 피가 멎도록 돕는 '응고' 기능은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이러한 혈액 응고 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여 혈관 안에서 피가 굳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면, 오히려 우리 몸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혈전(Thrombus)'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우리 몸속을 떠도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 '혈전(血栓)'이 무엇인지, 혈전이 어떤 무서운 질환을 일으키는지, 그리고 혈전을 제거하거나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혈전이란 무엇인가요?
혈전은 혈액이 혈관 내부에서 비정상적으로 응고되어 만들어진 덩어리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혈액이 흐르는 길(혈관)에 피가 굳어 뭉쳐진 '피떡'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상적인 혈액 응고는 출혈을 멈추는 데 필수적인 방어 작용입니다. 하지만 혈전은 상처가 없는 혈관 내에서 발생하여 혈액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혈관을 완전히 막아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혈전이 혈관 벽에서 떨어져 나와 혈류를 타고 이동하다가 더 좁은 혈관을 막는 경우를 '색전증(Embolism)'이라고 하며, 이 혈전 조각을 '색전(Embolus)'이라고 부릅니다. 색전은 우리 몸의 중요한 장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2. 혈전이 생기는 주요 원인
- 혈관 내피 손상: 혈관 벽에 상처가 나면 혈액 응고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예: 죽상경화증, 고혈압, 당뇨병, 흡연 등으로 인한 혈관 손상)
- 혈액의 흐름 이상: 혈액이 정체되거나 비정상적으로 흐르면 혈전이 생기기 쉽습니다. (예: 장시간 움직이지 않는 경우, 심방세동과 같은 부정맥)
- 혈액 응고성 증가: 혈액 자체가 더 쉽게 응고되는 성향을 가질 때 발생합니다. (예: 유전적 요인, 특정 약물 복용, 암, 임신, 염증성 질환 등)
3. 혈전이 일으키는 질환들
혈전이 어디에 생기고 어디를 막느냐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심근경색증 (Myocardial Infarction)
원인: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혈전이 생겨 혈관을 막으면서 심장 근육이 괴사하는 질환입니다.
증상: 심한 가슴 통증(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왼쪽 팔이나 어깨로 퍼지는 통증, 호흡 곤란, 식은땀, 메스꺼움 등.
위험성: 심장 마비로 이어질 수 있는 응급 상황입니다.
뇌졸중 (Stroke)
원인: 뇌로 가는 혈관이 혈전에 의해 막히거나(허혈성 뇌졸중/뇌경색), 뇌혈관이 터져(출혈성 뇌졸중/뇌출혈) 뇌 조직이 손상되는 질환입니다. 혈전으로 인한 뇌졸중이 전체의 약 80%를 차지합니다.
증상: 갑작스러운 반신 마비, 언어 장애, 시야 장애, 어지럼증, 심한 두통, 의식 변화 등.
위험성: 영구적인 신체 마비나 언어 장애를 남길 수 있으며,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폐색전증 (Pulmonary Embolism)
원인: 주로 다리 정맥에서 생긴 혈전(심부정맥 혈전증)이 떨어져 나와 혈류를 타고 폐동맥으로 이동하여 폐동맥을 막는 질환입니다.
증상: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가슴 통증(특히 숨을 들이쉴 때), 기침, 객혈, 실신 등.
위험성: 심장 기능 저하로 이어져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응급 상황입니다.
심부정맥 혈전증 (Deep Vein Thrombosis, DVT)
원인: 주로 다리 깊은 곳의 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질환입니다. 장시간 앉아 있거나 움직임이 없는 경우(장거리 비행, 수술 후 회복), 암, 임신 등에 의해 발생 위험이 높아집니다.
증상: 해당 다리의 부종, 통증(특히 종아리), 열감, 붉은색 또는 푸르스름한 피부 변색.
위험성: 혈전이 떨어져 나와 폐색전증을 유발할 수 있어 위험합니다.
말초동맥 질환 (Peripheral Artery Disease, PAD)
원인: 팔다리(주로 다리)의 동맥에 혈전이 생기거나 동맥경화로 인해 혈관이 좁아져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질환입니다.
증상: 걸을 때 다리 통증(파행), 저림, 차가움, 피부색 변화, 심하면 궤양 발생.
위험성: 심하면 조직 괴사로 이어져 절단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신장 경색 / 장간막 동맥 혈전증 등
신장이나 장으로 가는 혈관에 혈전이 생기면 해당 장기가 손상되어 기능 부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4. 혈전 제거 및 관리 방법
혈전이 발생했거나 발생 위험이 높은 경우, 혈전을 제거하거나 예방하는 다양한 치료법이 있습니다.
가. 약물 치료
항응고제 (Anticoagulants): '피를 묽게 하는 약'으로 알려져 있으며, 혈전이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막고 새로운 혈전이 형성되는 것을 예방합니다. 이미 생긴 혈전을 직접 녹이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스스로 혈전을 녹이도록 돕는 역할도 합니다.
종류: 와파린, 헤파린, DOACs(신규 경구용 항응고제: 리바록사반, 아픽사반, 다비가트란 등)
활용: 심부정맥 혈전증, 폐색전증, 심방세동 환자, 특정 수술 후 등.
항혈소판제 (Antiplatelet Agents): 혈액 응고의 초기 단계인 혈소판의 응집을 억제하여 혈전 생성을 막습니다.
종류: 아스피린, 클로피도그렐 등.
활용: 심근경색증, 뇌졸중 예방,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 후 등.
혈전용해제 (Thrombolytics / Fibrinolytics): 이미 형성된 혈전을 직접적으로 용해(녹이는)시키는 약물입니다.
활용: 심근경색증, 허혈성 뇌졸중, 폐색전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에서 신속하게 혈전을 녹여 혈류를 재개시키는 데 사용됩니다. 출혈 위험이 높아 사용이 제한적입니다.
나. 시술 및 수술적 치료
혈전 제거술 (Thrombectomy):
카테터(가는 관)를 혈관에 삽입하여 혈전을 직접 흡인하거나 기계적으로 제거하는 시술입니다.
활용: 급성 뇌졸중(뇌경색) 발생 시 막힌 뇌혈관을 뚫거나, 심부정맥 혈전증이 심한 경우 등.
스텐트 삽입술:
좁아지거나 막힌 혈관 부위에 스텐트라는 금속 망을 삽입하여 혈관을 넓혀주고 혈류를 유지시킵니다.
활용: 관상동맥 질환, 말초동맥 질환 등.
필터 삽입술 (IVC Filter):
하대정맥(하체에서 심장으로 혈액이 돌아오는 큰 정맥)에 필터를 삽입하여 다리에서 발생한 혈전이 폐로 이동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는 시술입니다. 항응고제 사용이 어렵거나 금기인 환자에게 고려됩니다.
혈관 우회술 (Bypass Surgery):
막히거나 심하게 좁아진 혈관 부위를 대체할 새로운 혈관(환자 자신의 혈관 또는 인조 혈관)을 연결하여 혈액이 우회하여 흐르도록 하는 수술입니다.
다.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한 예방
규칙적인 운동: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혈액 정체를 막습니다.
적정 체중 유지: 비만은 혈전 발생 위험을 높입니다.
금연: 흡연은 혈관 내피를 손상시키고 혈액 응고성을 높입니다.
절주: 과도한 음주는 혈액 응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충분한 수분 섭취: 혈액이 끈적해지는 것을 막아 혈액 순환을 돕습니다.
장시간 고정된 자세 피하기: 오래 앉아 있거나 누워 있어야 할 때는 주기적으로 다리 스트레칭을 하거나 발목을 움직여 혈액 순환을 돕습니다.
만성 질환 관리: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심방세동 등 혈전의 위험을 높이는 질환을 철저히 관리합니다.
혈전은 심근경색증, 뇌졸중, 폐색전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의 주범입니다. 혈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평소 건강한 생활 습관을 통해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만약 혈전 관련 질환의 증상이 의심된다면 지체 없이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